STORY.4

균열

네번째 스토리

'흰 눈 속에서 발견한 흔적'


2024년 11월 28일, 단 하루 만에 온 세상을 하얗게 뒤덮는 117년 만에 기록적인 폭설이 내렸다. 유안은 갑작스러운 폭설로 인해 문화유산 복원 프로젝트로 근무 중인 종묘에 피해가 없을지 걱정하며, 왕과 왕비의 신주가 모셔진 정전(正殿)으로 향했다. 눈이 소복이 쌓인 종묘는 새하얀 빛을 받아 장엄하게 빛나고 있었고, 신로 옆을 따라 천천히 걸으며 정전의 동문과 서문을 둘러보았다. 이어 신주가 봉안된 남문을 따라 지나던 중, 7번째 신실 앞에서 순간적으로 번쩍이는 섬광이 눈을 스치게 되면서 목조 기둥 표면에 어두운 빛깔의 불규칙한 균열이 생긴것을 발견했다.


본능적으로 손을 뻗어 균열을 만졌고 쉽게 알아차리지 못할 울퉁불퉁한 촉감이 미세하게 느껴졌다. 그 순간, 뭐라 설명할 수 없는 불길한 느낌이 그를 사로잡았고 서둘러 손을 떼고 한동안 그 자리에 멈춰 서서 기둥을 바라보았다. 오래된 문화재에 자연적으로 생긴 훼손이 아닌, 누군가 의도적으로 남긴 흔적 같아 즉시 상부에 보고했고, 곧 문화유산 연구자, 보존 전문가, 큐레이터들이 남문 앞에 모였다. 유안이 가리킨 기둥을 둘러싸고 자세히 살피던 한 연구원은 “변색이 있다고 했는데... 어디가 어둡게 변했다는 거지요?” 손끝으로 균열을 만지며 고개를 갸웃했다.


유안은 자신의 눈에만 보이는 어두운 그림자가 결코 자연적인 현상이 아닐 것이라는 확신이 들어 조심스럽게 "이 훼손이 제 눈에만 보이는 건, 아마도 제가 광시증으로 빛에 민감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탐지 기술을 활용하면 충분히 원인을 밝혀낼 수 있을 겁니다." 그러나 일부 보존 전문가들은 카메라로 촬영한 사진에도 별다른 흔적이 나타나지 않자, 자연 침식으로 인한 흔한 균열이라며 단순한 보수로 충분하다고 주장했다. 평소 조용하던 한 전문가는 "지금 영녕전 복원 작업도 빠듯한데, 아무도 보이지 않는 걸 굳이 밝혀낼 이유가 뭡니까?" 냉소적으로 응수했다.


하지만 유안은 물러서지 않았다. “종묘는 우리나라 왕실의 혼이 깃든 신성한 공간입니다. 임진왜란 당시 종묘를 점령한 일본군들이 의문의 죽음을 맞이했을 만큼, 이곳은 단순한 문화재가 아닌 왕실의 기운과 역사의 무게가 스며든 살아 있는 장소입니다. 우리가 지금 놓치는 것이 단순한 균열이 아닐 수도 있습니다.” 과거 수많은 문화유산 보호 프로젝트에 참여했던 경험이 있었기에, 사람들은 그의 의견을 쉽게 무시할 수 없었다. 날이 점점 어두워지면서 신로 위에 쌓인 눈이 바람에 휘날리는 가운데, 어두운 균열이 마치 살아 있는 듯 희미하게 퍼져나가고 있었다.


1.신주(神主): 조선 왕조의 역대 왕과 왕비의 영혼이 깃든 위패로, 종묘의 정전 및 영녕전에 봉안되어 있습니다. 이는 단순한 기념물이 아닌, 조상을 기리고 왕실의 권위를 상징하는 중요한 문화재입니다.
2.신로(神路): 종묘에서 왕과 왕비의 혼령이 다닌다고 전해지는 길로, 신성한 의미를 지닌 통로입니다. 일반적으로 이 길은 방문객이 직접 밟지 않으며, 주로 제례 의식 때만 사용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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